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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결혼 TIP & TALK   /  공모전 이야기 공모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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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 이야기

분홍맘의 알콩달콩 작은 결혼 이야기!

나만의 작은결혼 계획서 공모전


 
 
 

초등학교 동창 커플


 

우리 부부는 같은 초등학교에서 만나 결혼한 커플이다. 남들보다 늦은 결혼이었지만 소박하게 결혼을 준비하였고 그러한 과정들을 거친 덕분에 지금껏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사는 행복의 비결을 알게 되었다. 결혼을 준비하며 의견이 달라 좀 속상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마다 결혼을 먼저 한 지인들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니 서로 양보하고 지나친 과시욕은 버리라 충고하였다. 주변인들의 성대한 결혼식이 부러워 이것저것 결정할 때마다 너무 작고 소박한 것이 아니냐 생각하였지만 정말 시간이 지나고 보니 가급적 작게 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인지 새삼 깨닫는다. 결혼을 꿈꾸지만 각자의 사연으로 결정하지 못한 젊은 청춘들에게 크고 호화롭지 않아도 작고 소박한 결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일생의 한 번뿐인 소중한 의식을 무리한 욕심으로 먼 훗날 후회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작지만 소중한 나의 결혼 이야기를 담아본다.

 

 


작은결혼, 나만의 포인트를 두다


 


 

#1. 분홍맘의 알콩달콩 작은 결혼 이야기!

 

프롤로그 – 조금 작은 결혼식으로 노처녀 탈출 대성공!

 

노처녀였던 나는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결혼으로 나만의 가정을 꾸린다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고 먼저 결혼한 친구나 선배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결혼비용 또한 만만치 않아 결혼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서른셋 전근을 가게 되었는데 그 곳에는 서른다섯의 노총각 선생님이 있었다. 교무실 나란히 옆자리 짝꿍이었던 그와 나는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아이들과 학부모님, 동료들도 모르게 비밀연애를 하다 보니 데이트 기간도 짧았다. 결혼을 발표하고 당당한 공개 커플이 되고는 남들과는 다른 결혼 준비를 하며 어렵다는 결혼준비를 특별한 데이트의 추억으로 만들며 이제는 두 아이 낳고 알콩달콩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노처녀 분홍샘이 작은 결혼으로 아줌마 분홍맘이 될 수 있었던 나만의 노하우와 이야기를 적어본다.

 

#2. 노처녀, 노총각 샘 만나 결혼을 결심하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결혼에 대해 마음의 문을 닫고 지냈지만 친구, 선배 언니 결혼을 도와주다 나중에는 후배 결혼 도우미까지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결혼이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자꾸만 들었다. 하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결혼을 도와 주다보니 생각보다 결혼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걸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고 그리고 결혼 당사자가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는 결혼을 둘러싼 가족들 간의 갈등까지 알게 되니 정말 결혼이 어렵고 힘든 일이구나 고민이 많았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에 대해 갈망하면서도 결혼식과 이에 드는 비용을 비롯한 모든 것들이 너무나 부담스러워 자꾸 발을 뒤로 빼듯 머뭇거리는 마음 또한 생겼다. 서른중반이 되어갈 무렵 늦게나마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 다행이기는 했지만 결혼준비를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노총각 박 선생은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차근히 그리고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대화로 서로의 의견을 충분히 나눠보자고 나를 타일렀다. 그리하여 노처녀 이선생과 노총각 박선생은 짧은 연애의 연장선으로 결혼 준비를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의 도움 없이 우리 둘이 오롯이 준비하게 되었다.

 

결혼을 준비하며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이 바로 식장 예약이었다. 사실 예쁜 결혼식장에서 정말 너무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는 것이 소원이었다. 친구들도 다른 신부들도 그러했으므로 나 역시 그렇게 하고픈 로망이 생겼었지만 우리는 값비싸고 호화로운 웨딩홀 대신 변두리의 자그마한 예식장을 예약하고 왔다. 예약을 하고 오던 밤, 나는 서운한 마음이 들어 울적했다. 크고 좋은 호텔이나 웨딩홀에서 하고 싶었는데 나의 예식장은 유명하지도 그리고 내 주변인들은 그 누구도 택하지 않은 변두리 조그마한 웨딩홀을 예약했다. 서운한 나와 달리 박선생은 대만족이라고 했다. 유명하지도 멋들어지지도 않아 예약하는 사람이 드물어 우리 예식 다음 시간도 비어 있어 우리는 정말 여유롭게 그리고 웨딩홀 전부를 우리가 사용할 수 있다며 호기롭게 웃어보였다. 그 때는 박 선생의 말에 공감할 수 없었지만 결혼식 당일 자그마한 웨딩홀이다 보니 빠듯하게 예식 스케줄이 잡히지 않아 마치 우리 커플만 오붓하게 식을 치를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식장을 잡고 나서 바로 시작한 일은 바로바로 청첩이었다. 사전적 의미는 잘 모르지만 우리가 결혼한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초대할 사람에게는 결혼식 날짜와 장소를 알리는 것이 그 목적이라 생각하여 우리는 머리를 맞대었다. 일단 무분별하게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은 반대하는 것에 의견합일! 둘째 그렇다면 결혼식에 초대하지 못한 손님들에게는 우리의 결혼 사실을 어떻게 알려야 하나 고민한 끝에 열애 후 결혼을 결정하였다는 사실을 서신으로 쓰고 서신 중의 한 장은 우리 지역 라디오 방송국으로 사연을 보냈다.

 

#3. 청첩,, 주례 그리고 축가 나만의 결혼식 포인트를 두다!

 

"노총각 박 선생님과 노처녀 이 선생님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낭랑한 라디오 디제이의 목소리를 타고 우리 커플의 교제 그리고 결혼에 대한 사연이 전파를 타고 대전 곳곳에 널리 알려졌다. 아침 출근길 방송이라 친구는 물론 동료와 선후배 등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고 그 중 우리 부부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청첩장을 전하며 결혼식에 와 주십사 부탁을 드리며 작은 결혼에 참석할 손님들을 남들에게 과시할 목적으로 부풀리지 않았다.

 

고심 끝에 식장과 청첩을 마친 후에는 우리 결혼에 포인트가 무엇일까 고민하였다. 박 선생은 주례사에 그리고 나는 축가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대화가 오갔고 박 선생은 명예나 부가 높으신 분이 아닌 정말 화목하게 결혼 생활을 하고 있으며 그리고 아이들을 사랑으로 가르치시는 같은 학교 동료 선생님께 주례를 부탁드리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직장상사인 교장 선생님이나 대학교 은사님 등 사회적 지위가 높으신 분이 하셔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지만 주례는 그 사람에게 중요한 일이라 하여 한발 양보를 하고 다음 축가 문제로 상의를 했다. 나는 축가는 신부인 내가 직접 부르고 싶다고 했다. 경비를 줄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변두리 결혼식장이지만 남들과 다른 나만의 색깔을 입힐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곰곰이 생각하다 내린 결론이었다. 보들보들한 발라드도 아닌 산들산들 흥겨운 노래를 부르며 직접 춤도 추고 싶다는 뜻을 밝히자 박 선생은 나와 함께 축가에 동참하겠다며 뜻을 모아주었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주례와 축가는 결혼 당일에 빛을 바랬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평범해 보이는 동료 선생님의 주례는 당신이 살아오신 정직한 삶을 진실하게 담아주셔서 듣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주었고 나이 많은 노처녀 신부와 노총각 신랑의 격렬한 댄스와 함께 울려 퍼지는 어설픈 노래 소리는 잘 부르고 잘 추는 실력은 아니지만 자신들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와주신 하객들에 대한 고마움을 제대로 표현하였다는 칭찬을 받았다. 결혼 후 주례 선생님께 고마운 마음에 사례를 하였지만 한사코 반대하셔서 박 선생이 말한 주례 선생님의 올곧은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고 아울러 우리가 하고픈 작은 결혼에 대한 의미를 서로에게 알게 해주는 고마운 계기가 되었고 평소 숫기가 없어 사람 앞에 잘 나서지 않는 신랑 박 선생 역시 많은 하객들 앞에 나서서 마이크를 들고 노래와 춤을 추어주신 용기 덕분에 하객에 대한 진심어린 감사와 마음을 느낄 수 있어 나는 너무 고맙고 의미가 남달랐다.

 

#4. 할 일, 많은 결혼 준비, 우선순위 법칙으로 간단명료하게

 

결혼은 정말 소소한 것들마저 생각해야 하는 큰 행사임에 분명했다. 집부터 수저까지 크고 작은 모든 것들을 총망라해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준비 내내 절감했다. 낮에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밀린 학교 일에 발품을 팔아가며 결혼 준비를 해야 하니 몸은 너무나 힘들고 지쳐갔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우선순위" 법칙이었다. 모든 것을 해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잘 생각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과감히 생략 또는 약소하게 가 바로 우선순위의 법칙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집, 우리가 함께 결혼생활을 시작할 보금자리였다. 주변의 친구들이 집을 사서 시작하거나 아니면 좀 큰 평수에서 전세로 시작하는 것들에 대한 부러움을 버리고 우리 커플은 공무원 임대 주택을 신청했다. 광역시 기준 전세와 매매 구입가가 2~3억대를 훨씬 웃도는 시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육천 가량의 저렴하면서도 평수가 작은 공무원 임대 아파트를 신청했고 4년간 살 수 있어 거처를 정하였다. 그리고 가구는 꼭 필요한 것만 인터넷으로 저가 가구들을 구매하고 일부는 내가 제작하여 만든 것들을 사용하고 그리고 각자의 자취방에서 쓰던 쓸 만한 가구와 전자제품들은 그대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것들은 결혼하여 살면서 장만하는 것에 의의가 없었다. 그리하여 비용은 생각했던 것들에 비해 많이 줄일 수 있었고 이미 두 번의 혼례를 치른 시댁 가족들은 가지고 있던 한복을 입기로 하고 친정 가족들은 있는 사람은 입고 없는 우리 엄마는 대여소에서 저렴한 가격에 빌려서 당일 곱게 입으셨다. 값비싼 신부 마사지는 과감히 생략! 대신 한 장에 천원하는 마스크팩을 사다가 박 선생과 이 선생은 시간이 날 때마다 붙이며 나이 먹은 커플의 걱정인 피부에 대한 처방으로 제대로 대처했다. 

 

#5. 의견이 조금씩 달라도, 가족이 총출동하여 결혼을 돕다!

 

작은 결혼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이해가 필요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분들이 바로 양가의 어른들이시다. 우리 가족들은 내 뜻을 충분히 이해해 주었지만 시골에서 오랫동안 살고 계신 시댁어르신들은 작은 결혼에 대해 부정적이셨다. 특히 예단 문제로 좀 예민했었는데 생략하자는 우리 부모님과 그래도 친척 분들께 예의 표시는 해야 한다는 시댁 어른들 때문에 좀처럼 말다툼이 없던 우리 커플도 서로 의견을 달리했다. 너무 형식에만 얽매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상했다가 소중한 아들의 결혼에 친척분들게 조그마한 그러면서도 실용적인 선물을 하고 싶으신 시댁 어머니의 진심을 알게 되니 너무 과하지 않게 그리고 꼭 필요한 것으로 고마움과 감사의 뜻을 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후에 전해 들은 것인데 살림꾼이 시어머니께서 마련한 선물에 친척 분들은 비싸지 않아도 꼭 필요한 것이라며 진심으로 감사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동안 얹잖게 생각한 것이 죄송스러웠다. 평생 낭비를 모르시는 시어머니의 진심이 담긴 조그마한 선물은 작은 결혼을 거스르는 일이 아니구나 생각할 수 있었다. 예단 문제로 의견의 갈등이 있었지만 작은 결혼을 위해 양가 가족들이 모두 힘을 모아주신 것은 사실이다. 비용이 많이 든다는 신혼여행은 여행사를 다니던 시누이가 불필요한 일정들을 과감히 삭제하여 비용을 절감하고 꼭 필요한 코스로 저렴하게 짜주어 태어나 처음으로 해외로 떠난 신혼여행을 실속 있고 알차게 다녀올 수 있었고 비용이 드는 신부 들러리는 먼저 결혼한 동서가 기꺼이 도와주었고 결혼 당일 사진촬영은 친정 동생과 절친 친구가, 각자의 자취 살림의 신혼집으로의 이사는 서방님이 도와주셔서 값비싼 포장이사를 부르지 않아도 되어 정말 비용 절감이 많이 되었고 온 가족이 총출동하여 진심으로 도와주셔서 정말 저렴하면서도 꼭 필요한 일들을 빠뜨리지 않고 잘 해낼 수 있었다.

 

#6. 작은 결혼을 선택했던 우리 작지만 크게 사랑하는 방법을 실천하다!

 

작은 결혼을 선택하였다고 결혼에 대한 기대가 작지는 않다. 불필요한 것들은 줄여서 남남이던 두 남녀가 하나가 된다는 숭고한 뜻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작은 결혼이었다. 우리 둘은 교단에 서는 사람이라 아이들도 학부모님도 직접 참석하셔서 축하의 뜻을 전하고 싶다고 하셨지만 우리 부부는 정중히 사양하였다. 사정이 있어 오지 못하시는 학부모님이나 아이들이 서운하지 않도록 모두에게 우리의 결혼을 알릴뿐 오시지 않으셨으면 한다는 우리 부부의 뜻을 밝히고 일절 어떠한 선물이나 금전적 축의금도 받지 않겠노라 말씀드렸다. 물론 친분이 없는 동료와 친구 선후배에게 청첩하여 부담을 주는 일도 하지 않기로 약속하였다. 초대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우리의 결혼을 서신으로 알리고 초대하지 못한 것에 대한 사죄의 말씀도 함께 했다. 또한 예복은 둘 다 출근하여 입을 수 있는 실용적인 옷으로 정하였고 커플 티는 많이 세일하는 저렴한 옷으로 구입하여 신혼여행 때도 입고 지금껏 깨끗이 세탁하여 잘 입고 있다. 그리고 작은 결혼이 서운하지 않게 결혼을 준비하던 중 청계천에서 자물쇠로 우리들의 굳은 결심과 사랑을 전하는 이벤트를 서로에게 전하며 비록 작은 결혼이지만 사랑하는 마음만은 누구보다 크고 넓다는 걸 서로에게 진심으로 고백했다.

 

결혼 후 7년이 지났다. 우리 부부는 작은 신혼집에서 시작하였다가 지금은 시골로 아예 보금 자리를 옮겨 흙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작은 결혼으로 경험한 낭비를 줄이고 진심을 더하는 습관 덕분에 두 아이들의 백일과 돌잔치 역시 커다란 뷔페를 빌려 성대하게 하는 대신 아이들의 모습을 직접 찍은 사진들을 오리고 잘라 정성껏 앨범을 만들고 부직포를 잘라 만들어 생일을 축하한다는 커다란 현수막을 만들어 백일에 쓰던 것을 문구를 조금 바꾸어 돌잔치에 쓰고 큰 아이가 쓰던 것을 잘 보관하였다가 작은 아이 때도 쓰는 작은 기념일 만들기 습관을 지금껏 실천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호화로운 결혼을 만들기 위해 우리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하나씩 차근차근 대화하며 만들어간 작은 결혼 준비 기간 덕분에 7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부부는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알콩달콩 살아가고 있다. 아마도 크고 성대한 결혼을 위해 서로가 자신의 의견만 고집했다면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는 지금의 생활 방식을 전혀 알지 못했으리라! 좀 더 작게 그리고 좀 더 의미 있는 결혼을 위해 우리는 숱한 밤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로 양보한 덕분에 우리는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며 사는 행복한 신혼부부처럼 살아가고 있다.